오래전 카메라도 없었고 블러그 방도 없었던 시절의 얘기다.
그 전엔 자동차도 있었는데....
산행을 많이 다니던 때라 유지비 라든가 생활의 어려움으로 자동차를 처분을
하고 버스나 산행 일행들 차를 이용 하며 어렵게 산행을 할 때였다.
차가 없었던 터라 산행물을 오로지 등짐으로 버티던 때의 일이다.
그때도 산행을 많이 하던 때 인데. 여기저기서 산행동행을 많이 청해 왔었다.
그때도 아픈이들과의 동행도 많았던 터라 내 차가 없어도 그럭저럭 얻어타며
다니던때.
그 즈음 알게 된 어느 알콜중독 증세가 있는 친구를 알게 됐는데...
얘기인 즉.
10대때 부터 알코올중독 증세로 산중으로 요양도 많이 다녔다는 얘기다.
술 없이는 살아갈수 없을 만큼 애주가인 그는 매일 술을 두세병씩 마셨단다.
그뿐 아니라 손떨림도 심해서 한손으로는 술잔도 입에 가져다 먹지 못할만큼
손떨림이 심했었다.
그런 그가 내게 술 병을 좀 고쳐 달란다.
난 대뜸 내말을 잘 따라주겠냐 했더니... 따르겠단다.
그러면서 내말을 잘 들으면 3개월 안에 낫게 해 주겠다 했다.
그는 따르겠단다.
난 무척 어렵고 힘이들거란 얘기도 했었다.
그래도 해 보겠단다.
그럼 한번 시도해 보자며 다짐 약속을 하고...
그뒤로 함께 산행을 하게 됐고 낮에는 산행하느라 술 먹을 시간조차도 없었으니
자연히 술을 덜먹게 되고. 대신 산행이 끝나면 하루에 반병정도씩만 먹기로 했다.
낮시간동안 열심히 산행에 동참했고 비지땀을 많이 흘렸다.
술 양이 줄고 약재와 환재를 먹으며 땀을 많이 흘리니 자연히 몸속의 노폐물이
빠지며 몸이 몰라보게 좋아져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기를 몆개월 ...
보기에도 알콜증세가 나아서 많이 좋아졌었고 본인도 술병이 다 나았다 했다.
이용하는 차는 그의 승용차였는데...늘 내짐이 많은터라 뒷 드렁크 짐칸을 채웠다.
그러기를 1년이 지나고 어느 여름 날 ...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지가 않아서 그새 몸의 병이 낫고보니 생각의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왜 안그러겠는가.
힘든 산행에 짐보따리 까지 실어다 주는 것이 귀찮아지고 짜증스러운지라
슬슬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났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나는 평소와 같이 약초를 몆포대기를 해서 차에 실으려던
찰나에 그 친구 짜증을 내며.
" 약초에 벌레가 많으니 내차에 싣지말고 트럭을 불러서 싣고가라" 한다.
순간 난 하늘이 노랬다.
이 깊은 산골에서 짐을 싣지 말라면 어쩌란 말인가,
난 갑자기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뒤로 돌아서서 흐르는 눈물을 얘써 감추며 태연한 척
그에게 말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이라면 약초를 채취하기 전에 말하지 그땐 말이 없다가
이제와서 싣지 말라면 난 어떡하라고.
싣지 말라는 그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꽃혔다.
1년 반이나 아무말 없이 잘 다니다가 갑자기 당한 일이라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하기사 지병 다 나았겠다 몆년먹을 환재 줬겠다 뭐가 아쉬웠겠는가.
하지만 내맘엔 괴씸한 생각이 들며 속앓이를 했다.
난 늘 사람의 맘을 믿는다.
그 믿음 때문에 받는 상처 또한 깊다.
그러고 몆년이 흘렀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다시 술로 산다는 얘기가 들려와 괜히 맘이 언짢았다.
몸 다 나았으면 잘 관리를 해서 다신 그길로 안가야지 어리석은 사람...
참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이 가끔 나면 쓴 웃음을 짖는다.
지금 난 참 행복하다.
십수년이나 된 고물 똥(?)차이지만 내 가고픈 곳 눈치 안보고 어디든 갈수있어
너무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나보고 바보라고 하는가 보다.
ㅎ~~~~~~~~~
그러면 어떠랴~~
난 바보가 맞는것을..ㅎ~~~
난 역시 바보가 맞다.
그런 바보가 난좋다.
그리고 사랑한다
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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