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에 숨겨진 항생제가 있다
지하철에서 눈에 띠는 문구. "가장 강한 항생제인 징코마이신... 슈퍼박테리아... 항생제 내성률 1위... 약물오남용... 의약분업..." 필자는 의약분업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항생제 문제를 생각하면 약물남용 못지 않게 오염육류를 생각해 본다.
항생제 내성률 1위라는 조사가 일반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항생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를 포함한 주위사람들을 볼 때 정기적으로 항생제를 투여 받을 정도로 병원이나 약국에 자주 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설사 항생제가 들어간 감기약이라 할지라도 많아야 1년에 2, 3번. 그럼에도 국민전체가 지속적인 항생제 내성을 보인다면 병원이나 약국에서 단기간 복용되는 약물이 아닌, 우리가 늘 접하는 부분에서의 항생제 문제를 생각해 볼만하겠다.
우리 식탁에 숨어있는 항생제들. 가축의 항생제 문제는 과거부터 대두되어 왔는데 현 의약분업의 난리 속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가축들이 항생제에 노출된 것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대량 가두어 기르는 다두수(多頭獸) 사육에서 비롯했다. 농가마다 두어 마리씩 기르던 과거와 달리 농장에서 떼로 키우는 현실은 축사의 불결한 환경과 가축의 스트레스, 운동부족을 가져와 저항력 약화를 통해 가축병을 만연시켰다.
이것을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항생제. 항생제가 포함된 배합사료를 먹는 가축들은 비록 건강해도 예방차원에서 늘 약을 복용하니 알고 보면 사람들보다 항생제 내성률이 높을 지도 모른다.
분말상, 과립상으로 굳힌 페렛이라 불리는 배합사료엔 항생제가 들어가고, 그 항생제를 먹이로 먹는 가축 역시 항생제 내성 동물인 바 이러한 오염육류를 즐기는 사람들도 항생제 내성률이 높아진 것은 아닌지...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항생제 사료로 인해 가축들이 오히려 병든다는 점. 화학비료와 농약이 도리어 논밭에 병충해를 많이 발생케 하는 것처럼 대량 사육과 배합사료는 가축을 더욱 병들게 만들었다.
사람처럼 위궤양, 위암, 직장암 등에서부터 구제역까지 걸리는 가축들을 살리려 임의로 구한 주사제, 의약품을 사용하는 일부 농민들.
법적으로는 돼지의 경우 도축장으로 이동하기 30일 이전부터는 항생제 투여를 규제한다고 하나 동물용 항생제가 최장 6개월까지 잔류한다는 점과 경제논리가 우선되어 법이 무시되는 경우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항생제 고기"를 염려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비타민을 이용한 천연 항생제 사용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으나 이 역시 이윤 추구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상하게 요즘은 임질 환자가 적어" 어느 선배님의 말씀. 날로 문란해지는 성문화에 반비례해서 오히려 줄어든 성병은 늘 식탁에서 항생제를 먹는 까닭이 아닐까? 의약분업의 당위성을 항생제 남용에서 찾는다면 육류의 항생제 문제도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항생제 복용 닭, 인간에게 어떤 부작용 있나?
지나친 항생제 남용 세균내성만 키운다
By Christine Gorman (Time) / 안선주 (JOINS)
가금 사육농민이라면 즉시 알아챌 수 있는 사실이 한가지 있다. 양계장 안의 닭들이 기침하듯 콜록거리기 시작하면, 호흡기질병에 감염되었을 확률이 높은 데, 만약 그렇다면 수일 내에 2만여 마리나 되는 나머지 닭들에게로 전파된다.
그러면 수의사는 동물용 시프로(Cipro)에 해당되는 엔로푸록사(Enrofloxacin)이라는 항생제를 처방해 준다. 개별적인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양계농민은 치료제 5갤런(약 19리터)정도를 물과 함께 섞어 모든 닭들에 게 먹인다. 그리고 5일 후면 병들었던 닭들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심각한 재앙은 지나가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엔로푸록사신은 문제의 병원균을 죽일 수 있겠지만, 가금 의 장(腸)에 머무는 캄피로박터(Campylobacter)라는 변종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캄피로박터는 보균동물에게는 별다른 질병을 유발시키지 않지만 그 자체가 급속도로 증식하며 문제의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유전자를 퍼뜨린다.
그리고 6주 후 닭이 도살되면서 캄피로박터균이 닭 몸밖으로 유출되면 도살 장안에 퍼지게 된다. 아무리 철저하게 위생처리가 되었다 하더라도 일부가 남아 닭 허벅지, 가슴, 다리 부위와 함께 포장돼 소비자의 부엌에까지 옮겨지게 된다.
바로 여기서부터 진짜 문제가 불거지게 되는 것이다. 캄피로박터균은 인간에게 식중독을 유발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조금만 부주의하게 손을 씻거나, 적절치 못하게 조리된 음식을 섭취하면, 며칠 동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게다가 운이 안 좋으면 병원치료까지 받을 정도의 심각한 증세로 발전한다.
닭의 시프로에 해당하는 엔로푸록사신은 인간용 시프로와 흡사해 엔로푸록사신에 내성을 지니게된 세균은 인간용 시프로에도 쉽게 저항성을 갖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엔로푸록사신이 가금용 항생제로 허용된 1996년 이전에는 시프로類에 내성을 지닌 캄피로박터균에 감염된 환자 수는 미미했다.
그러나 1999년에는 그 수가 18%까지 증가했는데, 상당수 전문가들은 그 원인중 의 하나가 농가에서 사용된 조류용 항생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들 때문에 폐렴이나 결핵 같은 각종 질병 치료제들은 그 효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엔로푸록사신의 경우가 바로 인간이 약리학분야에서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주는 최근의 예이다. 농가에서는 열악한 사육환경 속에서 지내는 가축들의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 항생제를 복용시키고 있다.
한편, 부모들은 상기도 감염(上氣道; 감기, 독감, 인두염, 편도염 등)에 걸린 자녀에게 강력하고 치료범위가 광범위한 항생제를 먹인다. 또 소비자들은 항균 기능이 첨가된 도마, 부엌용 세제, 장난감 등으로 무장함으로써 세균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 싶어한다.
의사들은 항생제 남용이 점차 내성강한 세균을 초래하는 역효과에 대해 익히 알아왔다. 그러나 항생제가 적절하게 사용되었을 때조차 내성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균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신속하게 유전자정보를 상호간에 공유한다. 개개의 세포는 동종이든 타종이든 상관없이 플라스미드(plasmid)라고 하는 작은 원형의 이중나선 DNA를 반복적으로 교환한다. 심지어 죽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DNA 일부를 수집하기도 한다.
항생제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변종 박테리아는 내성을 키울 수 있는 유전자정보를 다른 세균에 전할 가능성이 높다.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기는 수(數)의 게임이다”라고 터프트 대학소속 연구원이자 ‘항생제 패러독스(The Antibiotic Paradox)‘의 저자 스튜어트 레비는 말한다. 세균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데다 번식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유리하다.
상당수 미국인들이 항생제를 예방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태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감기환자들은 항생제가 초기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는데도 축농증으로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생제를 찾는다.
이보다 더한 경우는 중이염 치료인데, 중이염은 폐렴구균을 포함한 다른 여러 종류의 박테리아로 인해 발병된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청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10년만에 중이염 치료로 인해 페니실린에 저항성을 갖게 된 폐렴구균 변종이 20%이상 증가했다.
아직 모든 세균성 감염을 치료하지 않고 자연 소멸하도록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다음에 감기에 걸렸을때 담당의사가 경과를 좀 더 지켜보고 약을 쓰자고해도 너무 놀라지 말도록. 병원들도 세균이 내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치료제를 바꿔야 하는지도 터득해가고 있다.
머지않아 이러한 고민을 덜어줄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지노믹스(유전체학)라고 하는 新과학의 진보로 과학자들은 새롭고 한 단계 높아진 신약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박테리아의 DNA를 찾기 시작했다. 연구목표는 병원균이 내성을 키우지 못하게 현재 사용되는 항생제와 완전히 다른 작용을 하는 치료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 페니실린과 같이 사용될 경우 페니실린의 약효를 회복시켜 내성을 지닌 세균을 제거하는 약품도 개발하고 있다.
한편, 미 식품의약청(FDA)은 시프로를 포함해 항생제들이 점차 그 효능을 잃어 가는 것에 대해 우려한 나머지 가금 사육농가에 문제의 항생제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제약업체들에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시프로와 엔로푸록사신을 생산하는 바이엘社는 세균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내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가시지 않는 궁금증이 남아 있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내성의 수준은 어느정도일까? “내성을 지닌 세균에 감염되면 약물을 복용해도 소용이 없다”고 레비는 밝힌다. 따라서 불필요하게 항생제를 복용하지 말고, 전문가가 처방해 준 경우 반드시 그 지시에 따름으로써 변종 세균의 확산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또한 차후를 대비해 남은 약을 보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계속될 것 ”이라고 하버드 의과대학 미생물학 및 분자유전학과 스테픈 로리 교수는 지적한다. “뭔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내성이 생기면 그에 향응하는 더욱 강력한 치료제를 개발할 것이다.” 이 치열한 싸움은 기껏해야 무승부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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